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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있었니, 반갑다" (서귀포 치유의 숲 이야기, 지은이: 김성식) 등록일. 2020-01-09 00:00:00 조회수. 91

서귀포 치유의 숲

김성식(한국교원대학교 교수)

 

  2018년 6월 퇴직을 2년 앞두고 연구년을 맞이하여 생애 처음으로 방문한 서귀포시에 펜션을 얻어 3개월간 살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서귀포 치유의 숲을 탐방하였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나는 숲의 향기에 취해 150번 이상 치유의 숲길을 걸었다. 11개의 숲길을 모두 걸었고, 코스도 다양하게 걸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최근에는 새로운 방법으로 탐방하게 되었다.

 

서귀포 치유의 숲에는 편백나무가 많아서 매일 다닌 사람이 몇 개월 만에 비염을 완치했다는 펜션 사장님의 말에 서귀포에서 첫 나들이 길로 치유의 숲을 선택하게 되었다.

 

  숲 입구로 가는 큰 도로는 산록남로이다. 한라산에서 가장 먼 서귀포 바닷가 포구를 지나는 길은 해안도로이다. 그 위쪽에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가 있는데 같은 길이라도 동쪽으로 가는 길은 동로, 서쪽으로 가는 길은 서로라고 부른다. 그위에는 중산간도로가 있고 그 북쪽에 산록로가 있다. 산록로는 북로와 남로가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산록남로인데 펜션에서 가면 서귀포에서 중문 방향으로 가야 하니 산록남로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도 집에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입구 도로변에 10대 정도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고 200미터 정도 들어가면 매표소와 100대 정도 주차 가능한 넓은 주차장이 있다.

 

  처음 방문하면 인터넷 예약을 하고 왔느냐 묻는다. 나는 집이 상효동인데 앞으로 3개월간 여기 매일 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매일 오겠다는 말에 매표소 안내원이 내 이름을 써서 매표구 위에 붙여 놓으면서 "여기 이름을 써 놓았으니 예약 안하셔도 와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들어가니 숲길 안내원이 다가온다.

 

  "어느 코스로 갈 생각입니까?"

  "처음이니 설명해 주세요."

  "가멍 코스로 힐링 센터까지 가서 오멍 코스로 돌아오면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탐방 시작 전에 저 위에 비치된 모기, 진드기 기피제를 뿌리고 가면 좋습니다."

 

친절한 안내원의 말을 따라 가는 가멍 치유숲길에는 야자수 나무 껍질로 만든 멍석이 깔려 있었다. 이 멍석은 질겨서 4-5년은 거뜬히 사용가능한데 장마 때 진흙이 넘쳐 파묻힐 경우에는 수명이 짧아진다고 한다. 신선한 산소를 만끽하며 길을 걷는데 속옷이 땀에 젖을 정도로 제법 경사가 있다. 가멍 치유숲길은 힐링 센터로 가는 큰 도로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숲길로 큰 도로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꼬불거리며 가는데 출발점에서 몇 미터 왔는지 표지판도 세워져 있다. 중간에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구분하는 2개의 작은 나무도 심어져 있었다. 삼나무는 뾰족한 나뭇잎이 뭉쳐 길게 뻗어 있고, 편백나무는 나뭇잎이 둥그렇게 갈라져 우리가 울타리 나무로 흔히 보는 측백나무와 비슷하다. 삼나무도 몸에 좋지만 편백나무가 더 좋다고 한다. 매표소나 큰 길 가에 있는 화장실도 내부에 온통 편백나무가 있어서 편백 향기가 진동한다.

 

  멍석 길을 따라 힐링 센터에 도착하여 나무 침대에 누워 보니 편백나무 숲 사이로 울릉도만한 작은 공간, 하늘이 보인다. 편백나무 향기가 천지에 가득하다. 잠이 오려는데 여기에도 모기가 있다. 서둘러 오느라고 진드기 기피제를 뿌리지 않고 온 것이 후회된다. 그러나 기피제의 고약한 냄새를 생각하면 피부에 직접 뿌리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 멀리서 분무가 살짝 닫게 뿌려야 하는 데 그렇게 세밀하게 신경 써서 뿌리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여기에서 준비해온 물을 먹는다. 간식은 물만 허용되는데, 나는 찬물을 먹으면 설사하기 때문에 따끈한 홍삼 내린 물과 바로 먹을 수 있게 썰어 온 사과 1조각을 먹는다. 바닥에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는 과자 같은 것은 절대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 음식물도 안 되지만 쓰레기를 꼭 되 갖고 가야 한다. 힐링 센터까지 오려면 물만 조금 가져오면 되지만, 더 많은 코스를 가려면 배낭에 보온 통 큰 것과 바로 먹을 수 있게 손질한 약간의 과일을 가져온다. 치유의 숲에서 가장 볼 성 사나운 모습은 쉼터에 앉아 귤을 까서 껍질을 버리면서 먹고 있는 광경이다. 심지어 김밥을 먹다가 버리기도 한다. 나는 귤껍질을 보면 즉시 주워 담을 비닐봉지와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다닌다. 그러나 김밥 부스러기는 곤란하다. 밥알을 하나하나 다 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밥알이 떨어진 장소에는 꼭 산새나 산짐승이 찾아와 먹고, 그 자리에 배설을 하고 간다. 어쩌다 한번 오는 관광객이 그런 사정을 알 수 없겠지만, 그들도 우리가 하는 행동이 바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자연을 접하면서 깨닫게 된다면 좋겠다.

 

  몇 번의 탐방 후에 치유의 숲에 있는 시오름 정상을 올라갔다. 힐링 센터 왼쪽으로 난 놀멍 코스를 따라가니 정상과 이어졌다. 놀멍 숲길로 정상을 가는 길에도 편백나무 숲길이 있어 기분 좋다. 그러나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길은 오르기도 힘든데 길 양 옆으로 멧돼지가 진흙을 파 놓은 모습이 보인다. 멧돼지는 치유의 숲에서 유일한 요주의 동물이다. 특히 봄에 번식기에는 공격적으로 변하므로 무조건 피해야 한다고 안내원이 말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위협을 가하면 더 달려들기 때문에 조용히 뒷걸음으로 물러나 나무 뒤에 숨는 것이 최선이라고 한다. 죽은 척 엎드리거나 도망치는 것은 가장 위험한 행동이란다. 새끼를 밴 경우나 갓 태어난 새끼를 데리고 있는 돼지는 특히 위험하단다. 그런 멧돼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돼지 흔적을 봤다는 말을 하니 아내는 다시는 시오름 정상을 가지 말라고 말렸다. 그러나 놀멍 코스가 아닌 산도록 코스로 가면 된다면서 아내를 설득했다.

 

  시오름 정상에서 오름 특유의 분화구를 돌아가 보면 한라산을 마주보는 작은 공간이 있다. 오름의 정상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도 좋지만 조그만 벤치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대한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였다. 정상을 올라가는 길의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른 계단 길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단은 무릎에 무리를 준다. 꼭 2개의 스틱을 집고 내려와 무릎의 충격을 완화시켜야 한다. 시오름 계단 길을 내려오고 난 뒤부터 나는 치유의 숲을 갈 때 꼭 스틱을 준비하여 갔다. 계단 옆으로 작은 공간이 있어 계단을 설치할 때 재료를 운반하는 작은 수레(아마도 봅슬레이 형태일 듯)가 지나다녔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계단 길을 오르내리며 쌓인 불만은 정상에서 힐링 센터로 내려가는 산도록 치유숲길에 들어서면서 씻은 듯이 사라진다. 울창한 편백나무 숲길이 너무 좋다. 이 향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천연 항생제이다. 적당한 간벌로 공간도 쾌적하다. 15분 정도 내려오는 산도록 편백나무 치유숲길이 전체 치유의 숲에서 최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길을 개척하여 가멍, 산도록, 시오름을 왕복하는 산행을 하며 2주일이 지났을 때 힐링 센터에서 내려오는 길에 힐링 센터에서 일하는 산림치유지도사를 만나 인사를 했다. 많이 다니다 보니 이제 제법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가볍게 지나치려는 나의 인사를 반갑게 받으면서 말을 걸어온다.

 

  "지금 하늘바라기와 숨비소리를 내려왔는데 길이 좀 험하지만 매우 좋았습니다."

  "거기는 길이 험해서 2시간 정도 걸릴 텐데요. 나는 전에 가베또롱에서 숨비소리를 오르다가 너무 어둡고 험해서 오고생이로 그냥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내려오는 길은 많이 걸리지 않아요. 산도록으로 올라가 하늘바라기로 내려와 보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진 뒤 시간이 될 때 하늘바라기와 숨비소리를 꼭 가보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을 가멍, 힐링 센터, 산도록, 시오름 코스만 다녔다. 일편단심 치유의 숲에서 산도록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산도록 치유숲길 중간에 편백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사람의 엉덩이처럼 볼록 튀어나온 부분에 껍질이 벗겨져 매끄러웠다. 여기에 오면 그 편백나무 엉덩이에 기대어 인사한다.

   "잘 있었니? 반갑다."

   비가 많이 온 뒤에는(제주에는 비가 오면 대부분 많이 온다.) 산도록 숲길 옆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요란한 굉음을 내며 거센 개울물이 흐른다. 빗물에는 경계가 없다. 숲 속 어느 곳에나 쏟아져 나뭇잎을 쓸어 모아 길을 만들고 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린다. 그 튼튼한 멍석도 말려 내려가거나, 토사에 파묻힌다. 많은 비가 내린 후 산도록 계곡의 개울물 소리를 올레길 7코스 법환동의 파도소리와 비교해 생각해 보았다. 파도소리는 피아노 소리처럼 리듬이 있고 정겹다. "바다는 파도를 따라 갯바위에 부서져 파랗게 변했다." 라는 말이 있는데, 산비탈을 질주해 내려가는 개울물은 '쉴 곳을 찾지 못해 부서져 내리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마음'처럼 하얗다. 야생마의 질주처럼 거침없고, 길들여 질 수 없는 열정이 있다. 그렇게 거세게 흘러내려도 이 세상은 너무 넓어 조만간 흔적 없이 사라진다. 요란한 만큼 짧은 여정으로 사라지는 존재가 산비탈 개울물이다.

 

  그렇게 산도록과 더불어 지내던 중 태풍 솔닉이 제주도 서귀포 남쪽 바다를 지나갔다. 태풍이 오기 전날 남원포구 근처 횟집 앞에서 5m에 달하는 해일처럼 절벽을 만들고 밀려오는 거대한 파도를 구경했다. 태풍 당일에는 집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나무가 휘어질듯 부는 거센 바람이었지만 이중창으로 만들어진 우리 집 유리창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부엌 위 쪽문 틈으로 휘파람 소리가 길게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면 초속 40m의 바람은 거센 것 같다. 태풍이 지나간 뒤 나가 본 광경은 깨끗하고 참신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태풍이 훑고 지나간 중문의 도로변에는 야자수가 50여 그루 부러져 있었다. 사계 송학산 소나무도 밑동부터 부러진 것이 많았고, 뿌리 뽑힌 나무도 많았다. 제주는 흙의 깊이가 10cm 정도로 얇고, 그렇게 얕은 흙 밑에는 바위가 많아 바람에 취약하다.

 

  이렇게 태풍 전날과 다음날에도 돌아다니게 된 것은 대학 동료 교수 부부가 서귀포에 휴가를 와서 같이 다니자고 해서다. 나는 내가 아는 싸고 맛있는 식당들을 소개해주고 갈만한 곳을 거의 다 안내하였다. 그러나 치유의 숲만은 알려주지 않았다. 혼자서 사색하면서 조용히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책하는 도중에 (무턱대고 찾아와 신세지는 일을 즐기는) 직장 동료를 만난다면 휴식이 노동으로 변할 것 같았다.

 

  태풍이 지나간 후 치유의 숲도 하루의 정비시간을 갖기 위해 휴장했다. 그 다음날 태풍 2일후 찾아온 치유의 숲은 별천지였다. 편백나무와 삼나무 가지들이 잘라져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사람이 할 수 없는 30m 높은 거목의 가지치기가 말끔히 완성되었다. 숲속 구석구석 쌓여 있던 낙엽에서 나는 눅눅하고 괴괴한 냄새가 말끔히 가시고 삼나무와 편백나무 가지 끝에 뭉쳐 있는 산소 덩어리가 산속 전체에 웅크리고 있었다. 비에 젖은 편백나무의 향기가 온몸을 산소로 휘감는 듯하다. 여기저기 뿌리째 뽑힌 삼나무와 편백나무들이 수없이 많이 있는데 어느새 모두 다 정리해서 치유숲길 탐방로를 걷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새로운 모습의 치유의 숲을 보면서 이 기회에 하늘바라기와 숨비소리를 탐방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먼저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진드기 기피제를 팔과 옷에 뿌리고 가멍 대신에 큰길을 따라 힘을 낭비하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힐링 센터에서는 물 한모금만 마시고 지나치고, 산도록에서 만난 편백나무에게 인사한 뒤, 하늘바라기 입구에서 간이 의자를 펴고 푹 쉬었다.

 

   어두운 암흑의 동굴처럼 보이는 조그만 개울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늘바라기 치유 숲길은 일단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기 때문에 길을 찾기 어렵고, 더구나 멍석 길은 전혀 없었으며, 가끔 보이는 붉은 리본을 따라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는 기분이 들어 시작은 유쾌하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라서 길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흐트러지고 나뭇가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러나 태풍의 덕택으로 이곳의 공기도 깨끗하게 정화되어 있어 점점 조용한 탐방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었다. 잠시 후 나타나는 표지판에 “하늘바라기는 거대한 나무의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보고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라고 씌어 있었다. 그리고 나타나는 삼나무 숲을 보니 정녕 하늘바라기가 맞는 말이다.

 

   산도록이 최고라는 말을 수정해야 되겠다. 하늘바라기가 최고다. 나무가 크니 숲속 공간도 크다. 그중에서도 큰 공간으로 이어진 길이 치유숲길이다. 태풍에 잘린 푸른 삼나무 가지들이 수북이 쌓인 길을 콧노래를 부르며 계속해서 걸어갔다. 하늘바라기 숲길은 길이 넓고 공간이 여유로워 마음의 치유도 함께 되며 탐방하는 사람이 없어 고즈넉한 정취로 최고의 숲길이다. 산도록 숲길의 끝 지점인 시오름 정상 바로 밑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힘이 들지도 않으니 이런 좋은 길을 옆에 두고 서귀포 시민들은 왜 찾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늘바라기를 30분 정도 내려오면 숨비소리 치유숲길을 만난다. 해녀가 잠수를 해서 전복을 캐고 수면에 떠올라 내쉬는 깊은 숨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아마도 서귀포 치유의 숲길 전체에서 가장 험한 길이라고 생각된다. 바위를 타고 오르락내리락, 길은 꼬불거려서 앞길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고 잘못하면 길 아닌 곳으로 들어가기 쉽다. 태풍의 영향으로 붉은 리본도 많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 삼나무도 없고 동백류 중심의 크고 작은 나무들이 뒤엉켜 길을 찾기 쉽지 않다. 더구나 나는 오늘 등산용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지네나 뱀이 뒷굼치를 물 것 같은 기분이다. 썩은 나무 쓰러진 곳 아래를 지날 때는 나무에서 뱀이 스르륵 기어 내려올 것 같았다. 등산화를 신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진드기 기피제를 잔뜩 뿌리고 올 걸' 하면서 후회했다. 가끔 모기와 쇠파리도 끈질기게 따라온다. 숨비소리 숲길은 깊은 바닷물 속에 잠수한 해녀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험한 숲길이다.

 

   숨비소리를 절반쯤 내려오니 오고생이와 만나는 지점에 안내 표지판이 있다. 전에 내가 거꾸로 올라올 때 이 지점에서 숨비소리를 포기하고 오고생이를 따라 간적이 있었다. 돌만으로 이루어진 넓은 오고생이 도로를 보면 옛 사람들은 이 길을 닦는다고 많이 고생했을 것 같다. (사실은 해방 직전 일본이 최후의 결전을 위해서 만든 전략적인 도로라고 생각된다.) 돌길 위로 고압선이 지나가서 나도 전혀 즐겁지 않은 돌길이었다. 따라서 남은 숨비소리를 끝까지 계속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숨비소리는 길도 숨어 있는 듯하다. 오고생이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들어서니 다시금 숨바꼭질하는 듯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숲길이 이어진다. 그래도 숨비소리 하단이 훨씬 수월하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하며 길을 따라 내려와 보니 숨비소리가 끝나고 가베또롱이 시작되는 표지판이 보인다. 여기에서 최초로 사람을 만났다. 40대 젊은 부부가 표지판 아래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상의하고 있었다. (내 기준에 요즘은 50대는 청년, 60대는 중년, 70대는 장년이다.)

 

   가볍다는 의미의 가베또롱은 숨비소리를 거쳐 온 사람은 진실로 가볍게 느껴진다. 산책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내려오니 가멍, 오멍, 큰길 합류지점을 만난다. 시간을 보니 출발부터 계산해서 총 3시간 걸렸다. 오멍을 따라 내려오면서 오늘 탐방한 이 길이 최고의 산책로라는 생각이 든다. 가멍, 힐링센터, 산도록, 하늘바라기, 숨비소리, 가베또롱, 오멍으로 이어지는 3시간을 걷는 최고의 치유숲길을 오늘 개척한 것이다.

 

   등산화가 아닌 샌들을 신고 뱀이나 지네가 나올까 걱정하며 길을 세밀히 살피며 걸어서 그런지 온몸이 쑤신다. 숨비소리에서 떨어진 나무가지를 스틱으로 치우다가 너무 무거워 기우뚱하며 돌 틈에 발이 끼었을 때 삐끗한 발목도 시큰거린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사려니 숲길을 서귀포 치유의 숲길과 비교하면 나는 사랑방과 안방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잘 가꾸어 놓은 산책길로 영혼의 쉼을 얻을 수 있는 산책로는 우리나라에 서귀포 치유의 숲길 밖에 없는 것 같다.

 

  이곳 치유의 숲을 다니는 3개월 동안 나는 그동안 찬물만 먹으면 설사를 하던 증상이 좋아졌다. 머리 윗부분에 머리털이 빠져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곳에 새까만 잔머리가 뭉텅뭉텅 자랐다. 허리는 2인치가 줄었고 몸무게는 5kg이 빠졌다. 몸이 가볍고 날아갈 듯하다. 오전에 3시간 등산하고 오후에 골프 연습장이나 헬스를 1시간 하고 나면 몸에 탁기가 모두 빠져 나가는 듯하다.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닦으며 퇴직 후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낸 후 나는 펜션에서 나와서 서홍동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다른 사람들은 정원이 있는 주택을 선호하는데 나는 치유의 숲을 정원처럼 다니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올레길 6,7,8코스와 윗세오름에도 몇 번 갔었지만 나는 치유의 숲을 최고의 산책로라고 생각하고 계속 찾았다. 그러던 중에 서홍동 주민이라는 말을 하면서 매표소 안내원을 귀찮게 하는 것이 싫어서 호근산책로를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호근산책로 입구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서 시오름을 오를 수 있는 갈레길이 있다. 처음에는 치유의 숲 큰길과 평행으로 달리는 길을 이용했지만 그 길에는 고압선이 설치된 곳이 몇 번 있어서, 나중에는 시오름으로 직행하는 코스를 선택해서 걸었다. 이곳이 아마도 가베또롱 옛길인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고압선을 만나는 길을 가멍 오근산책로, 시오름 직행코스를 오멍 호근산책로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렇게 붉은 리본이 나뭇가지에 묶여 있다.

 

   호근산책로를 따라 가베또롱 옛길로 시오름에 오르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소리는 물론 새소리도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호젓한 곳이다. 어쩌다 한 번 사람과 마주쳤는데 너무 반가웠다. 대부분 여러 명 그룹으로 다녔다. 나는 한쪽에 비켜서서 바라보며 인사했다. 그런데 상대방이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버린다. 그들도 이런 호젓한 곳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대화하며 있고 싶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천하태평 무심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결국 시오름을 올라가는 놀멍 코스와 합쳐져서 내려오는 길은 치유의 숲 큰길 따라 사람들과 어울려서 내려왔다.

 

   이렇게 2달 정도 지내다가 한 달에 1주일씩 청주에서 내려오는 아내와 함께 호젓한 호근산책로를 올라갔다. 아내는 1km도 가지 않아서 되돌아 내려가자고 했다. “멧돼지를 만날 수도 있고, 이렇게 호젓한 곳에서는 사람을 만나도 무섭다. 혼자 산에 갈 때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매표소의 안내원은 탐방객을 친절하게 안내하기 위해서 근무하는 것인데 왜 당신이 그 사람들 걱정을 하느냐? 앞으로는 꼭 ‘치유의 숲 큰길’만을 이용해서 숲길을 다녀라.”라고 크게 나무라면서 화를 냈다.

 

   그런데 시오름에 오르고 난 다음날에는 골프를 하면 힘이 없어서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힐링 센터까지만 다녀와도 충분하다. 시오름에 오르다가 늙어서 무릎 관절염으로 고생할 수 있으니까 욕심을 버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내와 논의한 끝에 힐링 센터에 가서 30분 기체조를 하고 내려오는 최종 루틴이 결정되었다. 오르는데 30분, 기체조 30분, 내려오는데 30분으로 오전 산책 코스로는 최적의 시간 안배가 되는 것 같다.

 

   여기서 잠시 기체조 이야기를 해야겠다. 기체조는 내가 살던 청주 우리 집 앞에 있는 매봉산에서 동네 할머니들이 매일 아침 10시에 모여 운동하는 것을 따라하며 배웠다. 그 때 나는 과도한 운동으로 근육이 뒤엉켜 1년 6개월 동안 왼쪽 어께에 기브스를 하고 병원치료를 받아 오고 있었는데 전혀 좋아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기체조를 하면서 6개월 만에 전혀 쓰지 못하던 어께가 완치되었다. 그 뒤로 매일 오전 산에 올라가 기체조를 한 것이 벌써 15년이 되었다.

 

   기체조를 하면서 학교에서 학생들과 MT나 등산을 가서 1박을 하게 되면 첫날 저녁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식전 기체조를 했다. 특히, 1학년 신입생들은 할 일 없이 멍청히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 데, 그들을 모두 모아 기체조를 한다. 한 학기의 강의가 시작되는 첫날에도 강의계획을 알려주고 필요한 SW들을 설치해서 간단히 샘플 프로그램 하나를 돌려본 후에, 남은 시간은 기체조와 노래 한곡으로 보낸다. 이제 기타를 친지도 5년이 되었다. 악보를 보지 않고도 노래 부르며 기타반주를 넣을 수 있다. 이런 생활이 이제 한 학기만 남았다니 섭섭하지만 언제나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나는 1년 6개월 동안 치유의 숲을 우리 집 정원처럼 활용하고 있다. 치유의 숲에서 친구도 사귀었다. 숲길을 설명하는 마을힐링해설사와 마트에서 만나 인사하고, 같이 노래방도 가고, 법환포구에서 생선회도 뜨면서 친해졌다. 산림치유 음악회에도 참석하여 피아노와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기도 하였다. 그 때 들은 로미오와 줄리엩의 주제가 ‘A Time for Us’의 바이올린 선율은 매우 감동적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쓸데없이 약을 많이 먹어서 위장과 간장이 약하다. 대학교 시절에는 냉방에서 지내어 기관지와 심장도 약하다. 오장육부가 다 허약한데 이제 퇴직하고 끝이 없는 안식년을 보내게 된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바로 병이 찾아온다. 그러므로 단 하루도 건강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오래 살아서 그들에게 정신적인 기둥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치유의 숲을 간다. 도시의 소음도 매연도 없고, 맑고 깨끗한 산소와 천연 항생제로 가득한 곳,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뜨릴 수 없는 소중한 내 하루의 시작을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큰 길을 따라 양 옆으로 조성된 가멍과 오멍(3.8km), 가볍다는 가베또롱(1.2km), 산뜻하다는 벤조롱(0.9km), 해녀의 숨소리 숨비소리(0.7km), 있는 그대로 오고생이(0.8km), 쉬면서 쉬멍(1.0km), 엄청난 엄부랑(0.7km), 시원한 산도록(0.6km), 놀면서 놀멍(2.1km),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하늘 보기 좋은 하늘바라기(1.1km), 여유 있는 노고록헌 숲길 등 총 15km의 치유 숲길을 여기 산림관리소 직원 10여명이 불철주야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이런 일은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국가가 해야 한다.

 

   로마시대에 공화정 초기의 집정관 푸블리우스는 로마 제일의 갑부였는데 자신의 돈을 전부 투자하여 공익사업을 벌였다. 그는 죽을 때 장례를 치를 비용도 남기지 못했는데 그 이후 공익을 퍼블릭(Public)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개인이 할 때에는 전 재산을 들여도 부족한 것이 공익사업이다. 그런 사업을 하고 있는 국가기관이 존재하고, 그 사업의 혜택을 우리가 누리고 있다면, 이곳을 사용하는 사람은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도 그곳의 직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조심스럽게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

 

   산림치유지도사, 녹지관리사, 마을숲길해설사 등 산림과 숲길을 가꾸고 이용을 돕기 위하여 오랫동안 연구하고 노력해온 그들의 정성을 생각하여, 치유의 숲에 오르는 모든 사람은 새삼 옷깃을 여미고 정중한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숲을 우리 집 정원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하면서 이용하면 좋겠다. 물론 자주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좋은 곳은 그냥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건강이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진다. 잘 이용해서 모두가 건강해지면 좋겠다.